리뷰 | 이민선 개인전 <필사의 유머>

A의 죽음에 부쳐. 

‘어느 날 갑자기 A는 죽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실없는 농담만 일삼다가 농담처럼 허망하게 죽어버린 A에 대한 30개의 짧은 일화가 매일 하나씩 게시된다 (<A라는 이야기>). 연재되는 이야기들은 엉뚱하고, 순진하고, 불경하고, 뻔뻔하던 A가 돌연 사라진 전, 후의 사정들을 담는다. 나도 최근에 비슷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살면서 계속 부조화를 찾고 (…) 거기에서 자기가 하는 말은 농담뿐이고 자기가 자기를 무의미의 홍수 속에 빠뜨렸다(<A라는 이야기> 26. 무의미 중에서)’ 는 그는 아무래도 오늘의 미술이 아닌가 싶다. 십 년에 한 번씩 죽어버린다는 회화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가 알던 그 예술도 죽었다가는 다시 살아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전시장 지도에 적힌 오늘의 A의 이름을 (죽었든 살아있든) 불러 본다. 유행했던 유머시리즈의 세 문장이 세 작품의 이름으로 붙었다 (<사오정은 점점 미안해졌다>, <귀신은 만득이의 개명소식을 전해들었다>, <북금곰이 최불암에게 코카콜라를 건네주었다>). 이야기의 자리에서 이탈해 버린 문장을 읽고 의미를 알기는 어렵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끝까지 듣는다고 해서 무언가 의미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우스갯소리들은 북극곰과 코카콜라, 붉은색과 홍삼 드링크처럼, 이미지(이름)에서 이미지(이름)로 차이들의 계열체를 그러모아 끊임없이 의미(없음)을 재생산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어떤 것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렇게 쓰여진 문장들은 의미가 미끄러지는 틈을 겨냥하여 엄격한 구조를 태연하게 빗겨 간다. 뒤집어진 소변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샘이라 불러 달라던 A의 유명한 일화처럼 말이다. 이름은 원래 그렇게 명백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A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는 전의 작업에서도 화면에 보이는 것과 목소리가 말하는 것, 이야기와 실재, 작품의 세계와 이민선의 일상, 이름과 그것이 지시하는 것들이 경계에서 부딪치고 우연하게 얽힐 때 드러나는 구조적 틈을 파고들며 이름이 꼬꾸라지는 순간들을 포착해 왔다 (마치 배우 최불암과 양촌리 김회장이 꼬여버리는 최불암 시리즈의 콩트처럼 말이다). 이름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담은 <귀신은 만득이의 개명소식을 전해들었다>에서는 짧은 영상들이 이어짐에 따라 화자와 연출가, 기획자, 제작자, 이민선, 이민선이라 불리는 자 등이 작가로부터 부스러져 나와 ‘야’, ‘몰라’, ‘?’의 이름 없음으로 흩어져버리기에 이른다. 이름과 그것이 지시하는 것 사이의 개연성, 대상을 명명하고 서명하며 보장하는 이름의 힘이 더 노골적으로 흔들린다.

 

이제 전시장에서 예술을 담보해 줄 작가의 이름이 사라졌다. 만득이와 사오정과 최불암의 시리즈를 재생산하던 무한히 많은 입들 속으로 작가의 특별한 힘은 자취를 감춘다. 강인한 목소리로 의미의 방향을 가리켜 줄 작가는 없다. 대신, 영상과 조각과 텍스트와 전시장의 구조물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기호의 성좌를 이루는 전시장에는 의미가 없어서 모든 의미가 가능해지고, 구조의 빈자리에 차이들만이 반복되고, 이름이 사라지면서 모든 해석이 가능해진 현대의 미술이 천연덕스럽게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모든 차이들의 가능성으로 포화하여 허무하게 비어 버린 공기 속에, 철 지난 마니페스토들이 줄줄이 죽어 나간 자리에, 동시대의 미술은 죽지 않고 유령처럼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어 마땅하거나 죽여주는 하나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옳고 하나도 그른 게 없는 지평 위에서, 그것은 소문과는 달리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은 채 일상의 틈에 달라 붙어 있다. 네와 아니오 사이 붙잡을 수 없는 ‘네니오’들의 틈바구니를 돌아다니다 붙잡으려 하면 미끄러져 버리는 그 현대미술을 죽이는 건 아무래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예술의 충동이 향하던 그 불가능의 모순, 즉 도통 알 수 없는 것, 말이 안 되는 것, 상식의 뒤통수를 치는 것, 그리고 그의 죽음을 꾸며내어 이야기함으로써 예술이 꿈틀거리도록 충동질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들이 죽었다고 이야기할 때 가장 생기를 찾는 것은 꽤 A 답지 않은가. 

©Jinho Lim